“내가 된장국에서 기대하는 맛” 에피소드 1
늘 그 해답을 생각하지만 여전히 내 머리 속을 맴도는 미해결 문제가 있다. 그 주제는 ‘내가 된장국에서 기대하는 맛’이다. 잠자기 전 TV를 잠시 켠 것이 화근이었는데, 드라마에서 된장국 먹는 장면을 본 것이다. 그 일상적인 장면은 된장국에 대한 평소 내 고민 전반을 순식간에 촉발시켰다. 누워서 뒤죽박죽 뒤엉킨 생각들을 반복해서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이번에는 고민의 요점을 확실히 정리해두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 들어 컴퓨터를 켜게 되었다.
주제와는 다소 벗어난 얘기지만, 가만히 있을 때 머릿 속에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 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TV에서 된장국 먹는 장면을 보며 된장국에 대한 평소 궁금증이 촉발된 경우, 그 생각이 어디서 왜 나왔는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난 이 현상을 "지식생태의 에너지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소멸되기 위한 지식의 잉여 결과물로 보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이전에 에너지를 많이 투입했지만 처리되지 못한 지식의 잔재인 것이다. 이는 지식 생태계 경쟁에서 떠밀려 소멸되기(잊혀지기, 지워지기) 위한 최후의 모습일 수도 있다. 둘째는 생사를 결정해 달라는 몸의 메시지로 보는 것이다. 몸이 지식을 처리하다 받아 들일지 말지 결정하지 못해 몸의 주인에게 밀어내는 과정인 것이다. 당신이 그동안 충분한 에너지를 투입했지만 몸의 시스템은 받아들이기 힘드니 이제는 결정하라는 최후 통보인 셈이다. 두번째의 관점에서 본다면, 된장국에 대한 내 결정은 “아직은 죽이지 말고 살려두라(시간이 더 필요하니 기다려달라는)”는 것이다.
미해결 문제는 “내가 된장국에서 기대하는 맛”이다. 어림잡아 두 달전부터 이 궁금증이 생겼다. 주위에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수긍할 수 있는 속시원한 답을 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사실 미각을 말로서 정확히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뿐더러 사람마다 독특한 맛에 대한 경험이 달라 이 문제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나와 관련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내가 1년에 100번 이상 먹는 된장국의 맛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어떤 이유든 용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음식에 관한 내 생각은 뚜렷한데, 생존을 위해 먹거나 독특한 경험을 해보거나... 둘 중의 하나이며 중간에 걸치는 사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삶에서 가장 후회하는 장면의 하나가 내 돈주고 비싼 음식을 먹고 난 직후로, 상황을 되돌릴 수도 없으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그 돈으로 물건을 샀다면 좀 더 오랜 시간 즐길 수도 있고, 조그만 기부라도 했다면 잔잔한 감흥이라도 느낄 수 있지만 음식을 먹은 후의 포만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왜 우리는 일생에서 오감 중에 미각에 상당한 비용을 지속적으로 지불하려고 할까. 어쩌다 수업 중에 대학생들에게 “먹는 데 돈 많이 쓰지 말고 그 돈으로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어떨까”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나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늘 그 반응은 싸늘했다. 때로는 대학원 수업에서도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교수님.. 우리는 교수님과 달라서 먹을 때 느끼는 조그마한 행복이 더 소중해요”란 뼈있는 답변을 듣곤 했다. 적어도 먹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의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생존을 위해 요리하는 대표적인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된장국이다. 김치찌개도 있지만 김치찌개의 핵심 재료인 신맛나는 김치를 지속적으로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의외로 김치찌개의 맛은 변수가 많아 된장국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된장국은 10분 이내로 완성될 정도로 단순할 뿐만 아니라, 밥에 말아 먹으면 편하기도 하고 생존의 기본적인 영양소를 제공해준다고 믿기 때문에 1주에 세 번은 먹게 된다. 물론 대부분 혼자 먹기 위해 끓인다. 된장국을 집중적으로 끓이게 된 것이 5년 남짓하므로 대충 어림잡아도 500번 이상의 요리 경험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혼자만을 위한 요리는 여러 실험을 할 수 있어 요리의 기본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맛이 없어도 내가 먹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부담도 덜하다. 여기서 실험은 맛에 관한 것인데 예컨대, 된장국을 끓일 때 특정 재료를 넣거나 뺐을 때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미각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재료를 투입했을 때의 소소한 미각적 변화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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